PTSD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죽음에 해당하는 사건과 상실 등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은 사람에게 크나큰 충격을 준다. 복합적 외상 후 스트레스는 현재 정신의학에서 등의 3가지로 연구되고 있고 이러한 양식을 띄고 있다고 한다. 충격적인 사건 뒤 일련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다. 그리고 기억할 수 가 없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우리의 몸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기억이 아니라 몸에도 그 상흔이 남은 것이 과 각성 상태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온몸에 과 각성 상태가 지속한다.
과한 각성은 극심한 사건에 대해 몸과 신체가 대응하기 위함인데 이 기능이 갑자기 고장이 난 것이다. 그리고 이 방어적인 몸의 기능은 고장과 함께 사람을 죽음까지 몰고 가는 듯한 느낌과 생각으로 사람을 옭매어 간다.
그리고 과한 각성상태를 경험하는 환우들을 지켜보면 각성상태로 인한 자의적 해석(오해)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그 안에서 조절하거나 싸움과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 가도 적지 않다. 그것 역시 부정적 피드백으로 다가오면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지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위축되고 더 각성하여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의 악순환이 지속한다.
사실 우리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어려움이다.
외상에서의 죽음에 대항하는 우리의 기능이 과잉 반응한 채로 멈춰진 것이다. 고무줄이 끊어진 것처럼 회복성을 상실하고 만성화된 것이다 고무줄로 치면 고무줄 자체가 탄력을 잃고 늘어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자 자연스러운 우리의 반응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 자체가 치료의 시작이다. 당연히 죽음의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며, 초연하게 상황을 나를 객관화시키는 상황이 치료의 핵심이다.
하지만 심리치료에서는 EMDR을 안 구운동을 증상 완화하는 기법, 이를 통해서 자기 죽음의 공포를 잠시 회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일시적인 효과이고 벗어나게끔 해주는 일시적인 방편이다. 이것이 과한 각성을 완화해주는 방법의 하나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라 쳇바퀴 지나는 행동이자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이러한 굴레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경계를 매번 고민하는 순간은 일생을 다하면서 생각하고 갈등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의 극한 고민을 하지만 이것을 직면한 이들은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이다. 어느 인간이 죽음이라는 곳에서 자유롭고 의연하게 수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죽음의 공포에 대응하는 것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후에 어떻게 삶을 살아갈까를 우리는 매번 생각해야 하는 존재이다. 죽음의 공포는 지나갔음을 인정하는 순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살기 위한 삶의 가운데와 죽음의 그림자를 거쳐 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어렵지만 그것을 넘어서도록 하는 방법은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준다. 심리적외상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인간의 한계와 취약점 제일 본연의 모습을 보인다. 우리의 인간의 타락과 비참함을 표현한다면 이렇게 적절하게 맞는 증상도 없을 것이다.
모든 전문가와 치료 역시 여러 방법을 다 쓰지만 그 과정이 어렵기만 하다. 물론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비하심을 바라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 상담에서 외상을 다루는 핵심은 기법에 있지 않다. 복음을 통한 회복이다. 회복이 더뎌도 그것을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 는 것 성장보다 더 큰 하나님의 거룩함을 체험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죽음의 경계에서 삶과 회복의 빛으로 나아오길 바란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55-58 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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