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게임을 과몰입으로 이해하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연구된 결과들로 게임을 덜 하는 아이들에게 나타난 결과는 친구들과 대인관계가 향상되면 게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고 심리학적으로는 애착에 대한 만족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연구결과가 많이 나온다. 즉 인간의 본질은 관계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많은 심리적 기제들과 원인들이 사람을 구성하고 형성하도록 돕는 다는 것이다. 자아가 만들어진다고 심리학적 입장에서 이야기 한다.
게임에서 주는 심리적 기제들과 게이머들에게 어떤 것을 제공해주는지 한번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가 게임중독을 바라보고 현재 병명으로 등재된 게임산업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여러측면에서 통합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으면 좋겠다.
게임이 주는 심리적 기제는 익명성과 익명성적인 그룹안에서 이루어지는 소통과 그것을 통한 활동, 그리고 그러한 활동에 결과물들에 부과하는 게임시스템은 우리사회를 투영하고 나타내준다. 그리고 그러한 게임의 본질은 세상에서 진행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투영된 욕구를 풀어주고 심리적 기제들을 같이 확인하고 가상에서 현실을 대체 하는 기제들을 대리 만족해주는 순간의 찰나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의 제공은 지속적인 게임에 대한 과몰입과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커뮤니티 가상으로 모인 공간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상공간의 커뮤니티는 실제 사람들이 가상적 공간에서 현실처럼 만나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허상이고 자신의 현실에 마주하는 것을 증강하거나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에 다시한번 격차를 느끼고 어려워 하는 부분도 있다. 여러부분에서 게임은 현실사회를 투영하면서 더 나아가 현실을 더 현실같이 사람들을 망가트리기도 한다.
게임의 본질적성향은 악함을 추구하는가? 아니다
놀이란 인간을 표현하는 하나의 영역이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다양한 영역중에 하나이다. 우리 인간사회는 다양한 발전을 통해서도 놀이를 같이 공유하며 재미를 추구해왔다. 그리고 이 영역은 고유한 인간만이 할수 있는 영역이다. 이것은 욕심과 죄로 인해서 왜곡 된 것이다.
왜곡된 놀이를 어떻게 바로 잡아갈건인가에 대한 문화적 기류와 논의가 같이 함의 되어야 할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놀이 문화와 지도 그리고 그러한 것을 추구하는 재미, 거기서 주는 통찰과 현안,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놀이는 전략, 확률에 놀이는 사람의 삶의 선택의 책임을 가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다양한 이점을 지니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놀이이다.
놀이의 가치는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것 이상이면서 간접경험을 실제 생활에 투영하는 모습도 같이 진행되는 문화의 한 요소이다. 게임이 다른 이들의 모든 사람들로 부터 모든 사람들이 사단의 제화에서 만들어지는 사람들이 만드는 못된 회사들인가? 어떻게 보면 맡고 어떻게 보면 틀리다. 그렇다고 모든 게임회사나 다른 회사들이 현재 만들고 있는 게임이 건강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놀거리가 없는 현실을 타게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게이머들의 주장도 한편 일리가 있고 그들의 말하는 주장을 같이 생각해보자.
성취감이 결여된 교육열이 높은 한국사회에 성취감을 주는 곳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돈을 벌게하는 산업을 만든 좋은 산업과 자본이 형성하게 만들어준 곳이고 게임과 여러가지 컴퓨터 의 발전을 이끌어왔다는 것을 우리도 부정 할 수 는 없다. 그리고 게임이 만들어지면서 많은 좋은 영향들도 만들어져 왔다고 보여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게임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게하고 기존의 고전게임들도 온라인화시켜 다양한 양상을 만들어 냈다고도 보여지기 때문에 다양한 점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시점에서 게임사가 중독세를 통해서 세금을 내야하는 것인가?
한편으로는 맞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하는 모든 이들을 일률적으로 다 게임중독으로 진단하는 정신과가 잘못인가? 양쪽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맞지만 과한 측면이 있어 왔고 그리고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을 관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 또한 게임을 경험하면서 살아왔던 입장에서, 그리고 전문가로서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주길 바란다.
정신의학과는 진단을 내리기전에 의학적 소견만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으로 이 사태를 이해하고 진단을 내려 주었으면 좋겠다. 상담가들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받고 진단했으면 한다. 그리고 게임을 하는 이들에 마음을 이해하면서 그안에 결핀된 요소들의 대한 대안들을 어른들이 다양하게 가꾸어주고 제시해주었으면 한다.
게임을 건전한 놀이 문화로 가져 가게 하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인 이해와 사회적 합의를 성숙하게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 녹록하지 않으며 여러 부분에서 문제를 다양한 양상을 풀어가는 모습에서 사회적 역량이 나왔으면 좋겠으며 바램이다. 선순환으로 풀어낼 묘책을 모든 이들이 같이 합의 하는 정신하에서 이루어 가면 좋겠다.
성경적으로 죄에 왜곡된 속임수에 빠져드는 현상을 우리는 봐야 할것이다.
성경적으로 죄에 왜곡된 속임수에 빠져드는 현상을 우리는 봐야 할것이다. 한쪽편에서만 다른가치를 보는 것은 어렵다. 죄를 걷어내고 복음의 정신으로 우리의 문화를 아름답게 발전시키고 영역을 확장해야한다. 그리고 성경적인 가치관안에서 죄에 탐욕과 죄의 고립화는 결국은 악행과 자신의 욕구에 의해서 지배 받게 될것이다. 그리고 지배받은 행동과 사고는 자신의 파국과 파국적 행동으로 이어지게 될것이다. 죄와 악은 상충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가해하면서 동시에 오염시킨다.
철저하게 우리의 쾌락과 유희만을 뽑아내게 하고 그것이 이야기 하는 거짓과 왜곡은 자신을 이용하면 충분히 즐길수 있다는 거짓을 선물한다. 그것은 악순환의 고리로서 처음의 유혹이며 그 안에 빠져 들면 나오기가 힘든 죽음과 사망의 늪에서 우리의 습관과 생활이 망가지고 왜곡된다.
중독의 성경적 이해와 존파이퍼의 금식을 통해서 복음적인 생활을 어떻게 습관화 시키고 거룩을 추구하는 것이 단순히 우리의 생활에 예배의 생활화 뿐만아니라 그이상임을 이야기 한다. 예배의 생활화는 모든 영역의 복음의 눈으로 분별할수있는 눈과 결단력을 우리에게 제공할것이다. 그러나 사단의 속임수에 꾀이지 말고 참된 복음의 관점에서 우리의 문화를 누리고 더욱 발전시켜야 할 과제를 얻고 있다.
놀이는 곧 게임을 포함한다. 그 이상의 영역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허무감, 수치감, 죄책감은 죄에 왜곡된것을 추구하기때문에 더깊게 몰려와 우리의 감정을 좀먹는다. 복음을 통해 회복되고 게임에서 추구하는 감정을 다스리고 절제하여 참된 복음에 눈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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